생수병이나 음료수병, 샴푸통, 세제통, 배달 음식 용기처럼 플라스틱으로 만든 물건을 뒤집어 보면 바닥에 작은 삼각형 표시가 새겨져 있는 경우가 있다. 그 안에는 1, 2, 5 같은 숫자가 적혀 있기도 하고, 주변에 PET, HDPE, PP 같은 알파벳이 함께 표시돼 있기도 한다.

평소에는 거의 눈여겨보지 않지만 한번 의미가 궁금해지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긴다. 숫자 1이 가장 좋은 플라스틱이라는 뜻일까. 숫자가 커질수록 재활용하기 어렵다는 의미일까. 같은 플라스틱인데 왜 어떤 용기에는 1이 적혀 있고 다른 용기에는 5가 적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삼각형 안의 숫자 1부터 7은 플라스틱의 품질 순위도 아니고 안전등급도 아니다. 몇 번까지 재활용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숫자도 아니다. 플라스틱을 만들 때 사용한 수지, 즉 플라스틱의 종류를 구분하기 위한 식별번호에 가깝다.
플라스틱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물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투명한 생수병과 불투명한 세제통, 부드러운 비닐봉지, 배달 음식 용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플라스틱이지만 성질과 녹는 온도, 강도, 투명도 등이 서로 다르다.
이런 서로 다른 재질이 재활용 과정에서 마구 섞이면 새로운 원료를 만드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종류의 플라스틱인지 구별하기 쉽도록 재질별로 번호를 부여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번호는 1부터 7까지이며 각각 PET, HDPE, PVC, LDPE, PP, PS, OTHER 같은 재질과 연결된다. 숫자 하나만 이해해도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이 생각보다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숫자 1부터 7까지는 각각 서로 다른 플라스틱 재질을 의미한다
삼각형 안의 숫자 1은 PET 또는 PETE라고 불리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를 의미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쉽게 접하는 플라스틱 가운데 하나다.
대표적인 것이 생수병과 투명 음료수병이다. 가볍고 투명하면서 내용물을 확인하기 쉽고 음료를 담기에 적합해 식품 포장재로 널리 사용된다.
마트에서 생수를 구입해 병 밑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PET라는 표시를 발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도 무색 투명 페트병을 별도로 분리배출하도록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같은 종류의 재질을 깨끗하게 모으면 다시 원료로 활용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기 때문이다.
숫자 2는 HDPE, 즉 고밀도 폴리에틸렌을 뜻한다.
PET가 투명한 음료병에서 자주 보인다면 HDPE는 비교적 단단하고 불투명한 용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세제 용기나 일부 우유통, 화장품 용기, 생활용품 용기 등에 사용된다.
HDPE는 충격에 비교적 강하고 내화학성도 좋아 여러 종류의 생활용품 포장재에 활용된다. 같은 플라스틱이라도 PET와 HDPE를 만져보면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숫자 3은 PVC, 폴리염화비닐이다.
PVC라는 이름은 플라스틱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봤을 가능성이 크다. 배관이나 건축 자재, 일부 포장재, 비닐 제품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돼 왔다.
PVC는 원하는 특성을 만들기 위해 여러 첨가제가 사용될 수 있고 다른 플라스틱과 섞였을 때 재활용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분리와 처리 과정에서 주의가 필요한 재질이다. 국내 포장재에서도 PVC 재질은 재활용 용이성 측면에서 불리하게 평가되는 경우가 있다.
숫자 4는 LDPE, 저밀도 폴리에틸렌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HDPE와 같은 폴리에틸렌 계열이지만 구조와 성질이 다르다. 비교적 부드럽고 유연한 특성이 있어 비닐봉지나 필름, 포장재, 일부 말랑한 용기 등에 사용된다.
우리가 손으로 쉽게 구부릴 수 있는 플라스틱 포장재 가운데 LDPE가 사용된 제품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다만 같은 LDPE라고 해서 무조건 같은 방법으로 배출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제품이 용기 형태인지 필름이나 비닐 형태인지, 다른 재료가 함께 붙어 있는지에 따라 분리배출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숫자 5는 PP, 폴리프로필렌이다.
PP 역시 우리 생활에서 매우 흔하게 사용되는 플라스틱이다. 음식 용기나 밀폐용기, 일부 배달 용기, 뚜껑, 생활용품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다.
PP는 비교적 가볍고 내열성이 좋은 편이어서 식품 용기 등에 많이 활용된다. 그래서 전자레인지용 식품 용기의 재질 표시를 살펴보다 보면
PP라는 글자를 발견할 때가 많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중요한 점이 있다. PP라고 표시되어 있다고 해서 모든 PP 제품을 무조건 전자레인지에 넣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제품의 형태와 제조 방식, 사용 온도 기준 등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전자레인지 사용 여부는 별도의 사용 가능 표시를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숫자 6은 PS, 폴리스티렌이다.
단단한 플라스틱 용기부터 발포 형태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일부 일회용 용기나 포장재 등에 활용돼 왔으며, 발포시키면 우리가 흔히 스티로폼이라고 부르는 형태의 소재로도 사용할 수 있다.
마지막 숫자 7은 OTHER다.
이 숫자를 보고 ‘7번 플라스틱’이라는 하나의 특정 재질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확히는 그렇지 않다. 1부터 6까지에 해당하지 않는 다른 플라스틱이나 여러 재질이 혼합된 경우 등이 OTHER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7이라는 숫자만 보고 정확히 어떤 플라스틱인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제품에 OTHER라는 표시 외에 추가적인 재질 정보가 있다면 그것까지 함께 확인해야 한다.
삼각형 숫자는 재활용 가능 횟수나 안전등급을 의미하지 않는다
삼각형 모양 안에 숫자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장 쉽게 하는 오해가 있다. 바로 이 숫자를 재활용 등급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번은 재활용이 가장 잘되고 7번은 전혀 재활용할 수 없는 플라스틱이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숫자 자체가 재활용 우수 순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1부터 7까지의 숫자는 기본적으로 어떤 플라스틱 수지를 사용했는지 구분하기 위한 식별 체계다.
또 숫자 1이라고 적힌 페트병을 한 번만 사용할 수 있고 숫자 5라고 적힌 PP 용기는 다섯 번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숫자와 사용 횟수는 관계가 없다.
플라스틱의 실제 재활용 가능 여부는 훨씬 복잡하다.
똑같은 PET라고 해도 투명한 생수병과 색이 짙게 들어간 용기, 다른 재료가 붙어 있는 용기는 재활용 과정에서 처리하기 쉬운 정도가 다를 수 있다.
라벨과 접착제가 붙어 있거나 내용물이 심하게 남아 있는 경우에도 재활용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이나 금속, 종이 등이 하나의 제품에 붙어 있어 분리가 어려우면 재질 자체는 재활용 가능한 소재라고 해도 실제 선별 과정에서는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삼각형 모양이 있다고 해서 그 제품 전체가 반드시 재활용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특히 해외 제품에서 볼 수 있는 1부터 7까지의 번호 체계는 원래 재질을 구분하는 목적이 크다. 삼각형과 숫자가 마치 재활용 표시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 마크가 있으면 반드시 재활용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재활용 여부는 지역의 수거 체계와 선별 시설, 제품의 형태와 오염 정도 등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분리배출 표시를 보면 단순히 숫자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PET, HDPE, LDPE, PP, PS, OTHER처럼 재질을 직접 표시하는 방식도 사용한다.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류를 구분하고 뚜껑이나 라벨처럼 서로 다른 재질이 함께 사용됐을 때 각각의 재질을 별도로 알려주는 표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생수병 본체는 PET인데 뚜껑은 HDPE이고 라벨은 PP일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생수병 하나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종류의 플라스틱 세 가지가 함께 사용된 셈이다. 그래서 투명 페트병을 분리배출할 때 내용물을 비우고 라벨을 제거하라고 하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재활용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플라스틱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재질을 가능한 한 잘 구분해 모으는 것이다.
같은 플라스틱인데도 재활용 방법이 다른 이유는 제품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에 붙은 숫자의 의미를 알고 나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같은 PP나 PET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왜 어떤 제품은 재활용하기 쉽고 어떤 제품은 재활용이 어렵다고 하는 것일까.
이유는 플라스틱 재활용이 재질만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재활용 과정에서는 버려진 제품을 수거한 뒤 종류별로 선별하고 세척한 다음 잘게 분쇄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다시 원료로 만드는 작업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재료가 많이 섞일수록 일정한 품질의 재생원료를 만들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투명한 페트병만 비교적 깨끗하게 모으면 색이 섞이지 않은 재생원료를 얻기가 유리하다. 반대로 여러 색상의 페트병과 라벨, 접착제, 다른 플라스틱이 뒤섞이면 선별 과정이 복잡해진다.
음식물이 묻은 배달 용기도 마찬가지다.
용기 자체가 PP처럼 재활용 가능한 재질이라 하더라도 음식물이 심하게 묻어 있으면 선별과 세척 과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용기를 버리기 전에 내용물을 비우고 가능한 범위에서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플라스틱 제품을 버릴 때 재질 표시를 확인하는 습관도 도움이 된다.
본체와 뚜껑, 라벨이 다른 재질이라면 쉽게 분리되는 부분은 나눠 배출할 수 있다. 다만 실제 분리배출 방식은 거주 지역이나 공동주택의 수거 체계 등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지역에서 안내하는 기준을 함께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또 삼각형 안에 숫자가 없다고 해서 플라스틱이 아니라는 뜻도 아니다.
국가나 제품에 따라 재질을 표시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고 국내 제품에서는 숫자 대신 PET, PP, OTHER처럼 재질 이름을 직접 적어놓은 경우도 많다. 따라서 제품 바닥이나 포장지에서 분리배출 표시와 재질 표시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다.
결국 플라스틱 용기 밑의 작은 숫자는 단순한 제조번호가 아니다.
1은 PET, 2는 HDPE, 3은 PVC, 4는 LDPE, 5는 PP, 6은 PS를 나타내며 7은 그 밖의 플라스틱이나 복합재질 등이 포함될 수 있는 OTHER 범주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숫자를 좋은 플라스틱과 나쁜 플라스틱의 순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숫자가 높다고 더 위험하다는 의미도 아니며 숫자가 낮다고 무조건 재활용이 잘된다는 뜻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숫자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구분하기 위한 정보라는 점이다.
앞으로 생수병이나 세제통, 배달 음식 용기를 버리기 전에 바닥을 한번 뒤집어 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작은 표시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PET인지 PP인지, 본체와 뚜껑의 재질은 같은지 다른지 확인하다 보면 우리가 단순히 하나로 생각했던 ‘플라스틱’이라는 물질 안에 상당히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매일 아무 생각 없이 버렸던 플라스틱 용기 바닥의 작은 숫자 1부터 7까지. 그 숫자의 정체는 재활용 횟수도, 제품의 품질점수도 아닌 플라스틱이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를 알려주는 일종의 재질 이름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