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면서도 한 번쯤 궁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지하철역의 이름입니다.
강남역, 홍대입구역, 광화문역, 독립문역, 올림픽공원역처럼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역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도 “강남역에서 만나자”, “홍대입구에서 내리면 돼”라고 말할 정도로 지하철역 이름은 어느 순간 주소보다 더 익숙한 장소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한 점도 있습니다.
왜 어떤 역은 동네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어떤 역은 대학교 이름을 사용할까요?
또 실제 행정구역의 이름과 지하철역 이름이 다른 곳도 있습니다.
대학교가 있다고 해서 모든 역에 대학 이름이 붙는 것도 아니고, 근처에 유명한 병원이나 기관이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역 이름을 붙일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하철역이 새로 생기면 이름은 도대체 누가 정하는 걸까요?
혹시 지하철 회사 직원들이 후보를 몇 개 만들어 놓고 투표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해당 지역 주민들이 직접 정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지하철역 이름 하나에도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과 기준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은 서울의 지하철역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왜 역 이름과 동네 이름이 다른 곳이 생기는지, 그리고 역 이름에 대학교나 병원 같은 기관명이 들어가는 이유까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지하철역 이름은 지하철 회사가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지하철 노선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나오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숫자나 알파벳으로 표시된 ‘가칭 역명’입니다.
공사 단계에서는 아직 정식 이름이 없기 때문에 공사 구간이나 위치를 기준으로 임시 이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후 개통 시기가 가까워지면 실제 승객들이 사용하게 될 정식 역명을 결정하는 과정이 시작됩니다.
그렇다고 어느 한 사람이 역 이름을 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시가 관할하는 도시철도의 경우 지역의 의견을 수렴하고 지명과 관련된 심의 과정을 거친 뒤 최종적인 역명이 결정됩니다.
이 과정에서 해당 자치구와 지역 주민의 의견도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사용해 온 동네 이름을 역 이름으로 사용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지역의 역사성을 나타내는 옛 지명을 살려 달라는 의견을 내기도 합니다.
반대로 새로운 상업지역이나 유명한 시설의 이름을 넣어 달라는 요구가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이 원하는 이름이라고 해도 반드시 그대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하철역은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공공시설이기 때문입니다.
특정 아파트 단지나 특정 상업시설처럼 지나치게 제한적인 명칭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해당 지역을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이름이 우선적으로 고려됩니다.
특히 서울의 역명 제정에서는 예부터 사용해 온 지명이나 법정동명, 도로명처럼 지역과의 관계가 명확한 이름이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오래된 지명이 없다면 주변의 문화재나 역사적인 장소, 널리 알려진 공공시설 등이 역명의 후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원칙을 알고 지하철 노선도를 다시 보면 재미있는 역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예를 들어 광화문역은 ‘광화문동’이라는 동네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 아닙니다.
서울을 대표하는 역사적 장소인 광화문이라는 이름이 그 지역을 설명하기에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역명이 된 것입니다.
독립문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독립문동’이라는 행정동을 그대로 가져온 이름이 아니라 인근에 있는 역사적인 상징물인 독립문이 지역을 대표하는 명칭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솔밭공원역, 올림픽공원역처럼 공원이나 시설 이름이 역명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오래된 지역 이름을 되살려 사용하는 역도 있습니다.
지금의 행정구역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옛 지명이라도 해당 지역의 역사성과 특징을 잘 보여준다면 지하철역 이름으로 다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하철 노선도는 단순한 교통 안내도가 아니라 서울의 옛 지명과 역사, 지역의 특징이 함께 들어 있는 또 하나의 지도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한 번 만들어진 역명이 사람들의 인식까지 바꾼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지역 이름을 따라 역 이름을 만들었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면 오히려 사람들이 역 이름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동에서 만나자”보다 “○○역에서 만나자”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다 보니 지하철역 이름 자체가 새로운 생활 지명이 되는 것입니다.
지하철역 이름을 정할 때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 번 정해진 역명은 단순한 안내판 글씨가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그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2.역은 이 동네에 있는데 왜 전혀 다른 이름을 사용할까?
지하철 노선도를 보다 보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깁니다.
지하철역이 위치한 행정동과 실제 역명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어떤 동네에 역이 만들어졌다면 당연히 그 동네 이름을 사용하면 가장 간단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 도시의 구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선 지하철역이 정확하게 하나의 동네 중심에 놓이는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두 개 이상의 행정구역이 만나는 경계에 만들어지는 역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 어느 한쪽 동네 이름만 사용한다면 반대편 주민들은 “왜 우리 지역 이름은 빠졌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법정동과 행정동의 이름이 서로 다른 경우도 있기 때문에 단순히 주소만 보고 역명을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 지역을 어떻게 부르고 있느냐입니다.
행정서류에 적힌 주소와 시민들이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지역의 범위가 항상 같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강남’이라는 이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강남역이라고 하면 특정 동 하나를 떠올리기보다 대형 상권과 업무시설이 밀집해 있는 넓은 지역을 생각합니다.
이처럼 어떤 이름이 이미 지역을 대표하는 명칭으로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면 행정동 이름보다 사람들이 알아보기 쉬운 명칭이 역명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지하철역 이름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승객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처음 온 사람이 노선도를 보더라도 어느 지역으로 가는 역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래된 지명이나 유명한 거리, 문화재, 공원처럼 사람들에게 익숙한 명칭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현상도 생깁니다.
지하철역이 들어선 뒤 주변 상권이 발전하면서 원래 작은 지역을 뜻했던 이름이 훨씬 넓은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는 것입니다.
‘역세권’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지하철역은 하루에 수만 명이 이동하는 공간이고, 사람들은 식당이나 카페, 회사 위치까지도 지하철역을 기준으로 설명합니다.
“주소가 어디예요?”라는 질문보다 “몇 번 출구예요?”라는 질문이 더 익숙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렇게 되면 역 이름이 단순히 기존 지역을 설명하는 역할을 넘어 새로운 지역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반대로 도시가 변하면서 역 이름과 실제 생활권 사이에 어색한 차이가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역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주변을 대표하던 시설이 수십 년 뒤 이전할 수도 있고, 지역의 중심 상권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하철역 이름은 쉽게 바꾸기 어렵습니다.
노선도와 안내방송, 표지판을 모두 변경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이미 그 이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20년, 30년 동안 사용한 역 이름을 갑자기 변경하면 오히려 큰 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4호선의 총신대입구역 이야기는 이런 역명의 특성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합니다.
실제 총신대학교로 접근하기에는 7호선 남성역 쪽이 더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총신대입구’라는 역명은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습니다.
한번 굳어진 역 이름은 단순한 거리만을 기준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결국 지하철역 이름은 지도 위 주소만 보고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와 지역의 인지도, 주민들의 인식, 주변 시설, 이용객의 편의성, 기존 역명과의 중복 여부까지 여러 요소가 함께 고려됩니다.
그래서 “왜 이 동네에 있는 역인데 다른 이름이지?”라는 의문이 들었다면 오히려 그 역의 이름을 한번 찾아볼 만합니다.
그 뒤에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지역의 역사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3.홍대입구·건대입구처럼 대학 이름은 왜 역명에 들어갈까?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 유난히 대학 이름이 많이 보입니다.
홍대입구역, 건대입구역, 숙대입구역, 성신여대입구역, 숭실대입구역 등이 대표적입니다.
처음 보면 간단합니다.
“근처에 대학교가 있으니까 대학 이름을 붙였겠지.”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대학교 앞에 대학 이름을 사용한 역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에는 수많은 대학이 있지만 그중 일부만 지하철역의 정식 이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특정 학교나 특정 시설의 이름을 무조건 역명으로 사용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지하철역은 개인이나 특정 기관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모든 시민을 위한 공공시설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대학 이름이 역명이 되는 경우가 있는 이유는 대학이 단순한 학교 한 곳을 넘어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홍대입구라는 이름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날 ‘홍대’라는 말은 홍익대학교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홍대거리, 공연장, 클럽, 카페, 음식점, 연남동 주변까지 포함하는 하나의 거대한 생활문화권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히려 “홍대 간다”고 말했을 때 실제 홍익대학교에 볼일이 있는 사람보다 주변 상권을 방문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대학 이름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학명이 지역 전체를 상징하는 지명처럼 변한 것입니다.
건대 역시 비슷합니다.
“건대에서 만나자”라는 표현은 이제 건국대학교 교내에서 만나자는 뜻보다는 건대입구역 주변 상권에서 만나자는 의미로 더 자주 사용됩니다.
대학교 이름이 어느 순간 생활 지명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입구’라는 표현도 재미있습니다.
‘○○대입구역’이라고 해서 역에서 내리면 바로 학교 정문이 눈앞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꽤 걸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입구는 반드시 ‘대학교 정문 바로 앞’이라는 의미보다는 해당 학교로 접근하는 대표적인 지하철역이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지하철역 안내판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병원이나 기업, 기관 이름은 무엇일까요?
이 부분에서는 ‘주역명’과 ‘부역명’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역 이름이 주역명이라면 그 옆이나 아래, 혹은 괄호 안에 추가로 표시되는 명칭이 부역명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에는 ‘역명병기’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주요 기관이나 기업 등이 일정한 기준과 심사를 거쳐 기존 역명 옆에 기관명을 함께 표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그중에는 유상으로 운영되는 역명병기 제도도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기업이나 병원, 학교 등의 이름이 지하철역의 원래 이름 자체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역명에 추가로 표시되는 것입니다.
다만 돈을 낸다고 해서 아무 회사나 원하는 역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역과 기관의 거리, 이용객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해당 기관의 인지도와 공공성 등이 함께 검토됩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의 위치 파악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기본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도 양쪽 모두에게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승객은 목적지와 가까운 기관이 어느 역에 있는지 쉽게 알 수 있고, 기관은 많은 사람에게 이름을 알릴 수 있습니다. 지하철 운영기관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주역명’과 ‘병기명’이 서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사용해 온 동네 이름이나 역사적인 지명을 기업이 돈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완전히 없애고 기업 이름으로 바꾸는 것과는 다른 제도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지하철을 타 보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어떤 역은 동네 이름을 사용하고 있고, 어떤 역은 옛 지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역은 문화재 이름에서 만들어졌고, 또 어떤 역은 대학이나 공원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시설 이름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별도의 기관명이 함께 적혀 있기도 합니다.
결국 지하철 노선도는 단순히 열차가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그림만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서울 사람들이 지역을 어떻게 나누고 불러왔는지, 어떤 장소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더 재미있는 점은 지하철역 이름도 끊임없이 도시와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동네가 역 이름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대로 역 이름이 동네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역을 중심으로 만나고, 가게가 생기고, 상권이 만들어지면서 어느 순간 그 역 이름이 주변 지역 전체를 대표하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심코 말하는 “홍대”, “건대”, “강남”, “신촌” 같은 이름에는 단순한 주소 이상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다음번 지하철을 탈 때는 노선도의 역 이름을 조금 다르게 바라봐도 좋겠습니다.
“왜 하필 이 이름일까?”
“여기는 동네 이름일까, 옛 지명일까?”
“대학교 이름은 언제부터 붙어 있었을까?”
평소 수십 번씩 지나쳤던 지하철역 이름 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 우리가 몰랐던 서울의 옛 모습과 도시가 변해 온 과정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