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포동·구로동·가락동, 우리가 매일 부르는 동네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서울에는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사용해서 그 뜻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동네 이름이 많습니다.
강남의 개포동, 서울 서남부의 구로동, 그리고 가락시장으로 잘 알려진 송파구 가락동도 그중 하나입니다.
“개포동에 살아.”
“구로에서 만나자.”
“가락시장역에서 내리면 돼.”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이런 지명을 말하지만, 막상 “개포가 무슨 뜻이야?”라고 물으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요즘의 서울은 높은 아파트와 지하철, 넓은 도로가 가득한 거대한 도시이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지명의 상당수는 서울이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던 시절에 만들어졌습니다.
아파트 대신 논과 밭이 있었고, 넓은 도로 대신 사람들이 걸어 다니던 고갯길이 있었으며, 지금은 건물로 가득 찬 곳에도 작은 마을과 개울, 포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네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개발되기 전 서울의 모습을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지명은 개포동, 구로동, 가락동입니다.
평범하게 들리는 세 동네 이름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요?

1.개포동은 정말 ‘개’와 관련이 있을까? 갯벌에서 시작된 이름
개포동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으면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개포’라는 단어만 놓고 보면 마치 동물인 개와 관련된 이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개포동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여러 가지 우스갯소리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지명의 유래를 따라가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서울 강남구가 소개하는 개포동의 한자 표기는 ‘開浦洞’입니다.
여기서 ‘포(浦)’는 물가나 포구를 뜻하는 글자입니다.
강남구청의 공식 지명 유래에 따르면 이 지역은 과거 갯벌이 있는 곳이어서 사람들이 ‘개펄’이라고 불렀고, 이 말이 시간이 지나면서 ‘개패’와 같은 형태로 변한 뒤 한자로 ‘개포(開浦)’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지금의 개포동 모습을 생각하면 조금 낯선 이야기입니다.
현재 개포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학교, 넓은 도로입니다. 주변에는 양재천이 흐르고 구룡산과 대모산이 자리하고 있지만, 이곳이 한때 물과 갯벌의 영향을 받던 지역이었다는 사실은 현재의 도시 모습만 봐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개포동이라는 이름에는 또 다른 지명 이야기도 얽혀 있습니다.
강남구청 자료에는 지금의 대치동 미도아파트 일대에 소반처럼 생긴 포구가 있어 한때 ‘반포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그런데 이미 다른 지역에서 반포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어 동명 중복을 피하고자 개포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설명도 함께 소개되어 있습니다.
즉 개포동이라는 지명을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개’라는 글자 자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지역에 물이 있었고, 포구와 갯벌 같은 자연환경이 존재했다는 점을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도시의 모습은 길어야 수십 년 사이에 만들어진 경우가 많지만, 지명은 그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습니다.
건물이 세워지고 논밭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서도 사람들이 오랫동안 불러온 이름은 그대로 남는 것입니다.
개포동 역시 그런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63년 행정구역 확장으로 서울에 편입된 뒤 강남 개발을 거치면서 이 일대의 모습은 크게 변했지만, ‘개포’라는 두 글자 속에는 개발 이전 이곳의 자연환경을 짐작하게 하는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개포동이라는 지명을 알고 난 뒤 양재천 주변을 바라보면 조금 다른 느낌이 듭니다.
지금은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잘 조성된 도심 속 하천이지만, 오래전 사람들에게 물과 주변 지형은 동네 이름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개포동은 어쩌면 지명이 ‘옛 지도’의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사례인지도 모릅니다.
도시가 완전히 달라진 뒤에도 이름 속에는 예전 풍경의 조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2.구로동의 ‘구로’는 정말 아홉 명의 노인이라는 뜻일까?
이번에는 서울 서남부로 가보겠습니다.
구로동의 한자 표기는 ‘九老洞’입니다.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九는 ‘아홉 구’, 老는 ‘늙을 로’입니다.
즉 글자만 보면 ‘아홉 노인’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정말 아홉 명의 노인 때문에 동네 이름이 구로가 된 것일까요?
구로구청이 소개하는 공식적인 동명 유래에는 실제로 이와 관련된 전설이 등장합니다.
옛날 이 마을에 장수한 노인 아홉 명이 살았고, 그 이야기에서 ‘구로(九老)’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구로구청은 구로동의 이름이 이 ‘9명의 장수한 노인’에 관한 전설에서 유래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을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건처럼 받아들이기보다는 오래전부터 전해진 ‘지명 전설’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옛 지명을 조사하다 보면 이런 방식의 이야기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
어떤 지역에 장수한 노인이 살았다거나, 신기한 바위가 있었다거나, 유명한 인물이 지나갔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마을 이름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록이 충분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던 이야기가 지명을 설명하는 중요한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구로라는 이름 자체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구로구청 자료에 따르면 조선 영조 시대까지 이 지역은 경기도 금천현 상북면의 구로 1리와 구로 2리로 불렸고, 1795년 금천현이 시흥현으로 바뀐 이후에는 시흥현 상북면 구로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구로’라는 이름은 현대에 구로공단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이름이 아닙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구로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구로디지털단지나 과거의 구로공단을 떠올립니다.
공장과 산업단지, 출퇴근하는 직장인, 지하철역과 빽빽한 건물이 구로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로라는 이름은 그런 도시 풍경보다 훨씬 먼저 존재했습니다.
구로구청 역시 급격한 도시화와 공단 형성으로 인해 과거의 자연부락 이름이나 옛 지명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흥미롭습니다.
동네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구로’라는 이름만큼은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아홉 노인에 관한 이야기가 정확히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게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아홉 명의 장수한 노인이 살던 마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사실 자체가 재미있습니다.
수백 년 뒤의 우리는 구로라는 말을 들으며 디지털단지와 지하철을 떠올리지만, 옛사람들은 전혀 다른 풍경과 이야기를 떠올렸을 수도 있습니다.
지명은 이렇게 같은 두 글자를 유지하면서도 시대마다 전혀 다른 이미지를 품게 됩니다.
3.가락동은 음악의 ‘가락’일까? 이름에 남아 있는 옛 마을의 흔적
가락동 역시 이름만 놓고 보면 여러 가지 상상이 가능한 곳입니다.
‘노래의 가락’, ‘음악의 가락’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송파구 가락동의 한자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음악의 가락과는 다릅니다.
가락동의 한자 표기는 ‘可樂洞’입니다.
‘가히 가(可)’와 ‘즐거울 락(樂)’을 사용합니다.
글자만 풀이하면 ‘즐거울 만한 곳’, 혹은 ‘살기 좋은 곳’처럼 느껴지는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그런 의미로 만들어진 이름일까요?
송파구가 소개하는 공식 자료를 보면 재미있게도 가락동 이름의 정확한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소개되는 이야기는 이 일대에 원래 ‘가락골’이라는 마을이 있었고 그 마을 이름에서 가락동이 유래했다는 설입니다. 과거 서울 외곽에는 지금처럼 넓은 행정동 하나가 만들어져 있던 것이 아니라 작은 자연부락들이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가락동 일대에도 홍이마을, 넘어말, 새터말, 방죽말, 방죽안말, 솔모랭이처럼 다양한 이름을 가진 자연부락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1914년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이러한 자연부락들을 합쳐 당시 광주군 중대면의 ‘가락리’로 편성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가락동이라는 이름에는 또 다른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1925년, 이른바 ‘을축년 대홍수’ 때 한강이 범람하면서 송파동 일대가 침수되었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비교적 높은 이곳으로 옮겨와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터전을 잡은 사람들이 이곳을 두고 ‘가히 살 만한 땅’이라고 생각했고, 여기에서 ‘가락’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설입니다. 송파구 공식 자료에도 이 이야기가 함께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만 보면 한자 ‘可樂’과도 상당히 잘 어울립니다.
큰 홍수를 피해 새로운 곳으로 옮겨온 사람들이 “이곳이라면 살 만하다”고 생각했고, 그 의미가 동네 이름이 되었다니 꽤 인상적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 점이 하나 발견됩니다.
송파구 자료에는 이미 1914년에 여러 자연부락을 합쳐 ‘가락리’라고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을축년 대홍수는 그보다 뒤인 1925년에 발생했습니다.
시간 순서대로라면 1925년 홍수 때문에 처음으로 ‘가락’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보기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송파구에서도 가락동의 유래를 하나의 확정된 사실로 설명하지 않고, ‘가락골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와 ‘가히 살 만한 땅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를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바로 지명 이야기를 찾아보는 재미입니다.
우리는 흔히 지명에는 하나의 정확한 정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사용해 온 이름 중에는 정확한 시작점을 찾기 어려운 것도 많습니다.
먼저 사람들이 부르던 우리말 마을 이름이 있었고,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비슷한 소리의 한자가 붙기도 합니다. 시간이 더 흐르면 그 한자의 뜻에 맞는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져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명을 볼 때는 ‘이 이야기가 진짜인가, 가짜인가’만 따지는 것보다 여러 기록이 어떤 순서로 남아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더 흥미롭습니다.
개포동, 구로동, 가락동을 나란히 놓고 보면 그 차이가 더 잘 보입니다.
개포동이라는 이름에서는 갯벌과 포구처럼 과거의 자연환경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구로동에는 아홉 명의 장수한 노인이 살았다는 오래된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가락동에는 가락골이라는 옛 마을 이름과 ‘가히 살 만한 땅’이라는 후대의 이야기가 함께 전해집니다.
세 곳 모두 현재는 아파트와 지하철, 도로와 상가가 가득한 서울의 평범한 동네입니다.
하지만 이름을 한 겹씩 벗겨 보면 그 아래에는 지금은 사라진 갯벌도 있고, 오래된 마을도 있고, 실제인지 전설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동네 이름은 일종의 작은 타임캡슐과도 같습니다.
도시는 계속 변합니다.
논밭이 아파트가 되고, 작은 마을길이 왕복 여러 차선의 도로가 되며, 사람들이 기억하던 옛 풍경도 하나씩 사라집니다.
하지만 이름은 의외로 오래 남습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말하는 ‘개포’, ‘구로’, ‘가락’이라는 단어 속에 과거 서울의 모습이 숨어 있는 이유입니다.
다음에 지하철을 타고 익숙한 동네 이름을 보게 된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
“이 동네는 왜 이런 이름이 되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매일 지나치던 평범한 지명 하나가, 생각보다 훨씬 오래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모릅니다.